어제 특새를 마치면서 받은 은혜를 나구고자 합니다.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다. 왜 그럴까?
목사님께서는 길에는 이름이 있지만 땅에는 이름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옥토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땅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것을 품어 주는 땅이 옥토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으며 깨달았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의 근본에는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그러한 마음들이 부딪히면서 갈등이 생기고 다툼으로 이어진다.
겉으로는 옳고 그름의 문제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문제도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인정받고 싶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다. 자신을 높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해야 한다.
목사님께서는 상황이 어떠하든 기도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기도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바뀔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달라고 기도해도 그 사람이 살아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기도해야 하는가?
믿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 갈 수 있다.
첫날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간증이 떠올랐다.
목사님께서는 다리를 고쳐 달라고 몇 년 동안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신유 집회에서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말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셨다. 그 후로는 더 이상 다리를 고쳐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실제로 다리가 고쳐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리의 문제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게 되셨다. 육체적인 치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음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신 것이다.
이 간증을 통해 기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도의 응답은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결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상황을 바꾸시는 것으로, 때로는 바뀌지 않는 상황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한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과 다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교회 안에 갈등이 있더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더라도 기도해야 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앞서 내 안에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기만을 바라기보다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묻고 기도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황이 내 뜻대로 바뀌는 것만이 아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을 지켜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특새를 통해 내가 깨달은 기도의 의미이다.
특새를 통해서 기도의 의미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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